역사속 숙명의 라이벌

라이벌

다른 어떤 누구에게 져도 결코 라이벌에게는 질 수 없다.
응원전, 경기결과, 경기내용 등 경기에 관련된모든 것에서 승리해야 한다.
비록 결과에서 지더라도 기 싸움과 입담에서는 결코 져선 안 된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의 승리를 정당화시켜서는 안 된다. 이것이 ‘ 축구계 ‘ 라이벌의 특징이다.
이 때문에 축구를 ‘ 창칼 없는 전쟁 ‘이라 일컫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잉글랜드 VS 아르헨티나

포클랜드 전쟁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가 앙숙이 된 결정적 이유는 바로 포클랜드 전쟁의 여파 때문이었다.

포클랜드 전쟁이란 포클랜드 제도에 대한 주권을 놓고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가 대립한 전쟁을 말한다. 1820년대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아르헨티나가 말비나스, 즉 포클랜드에 대한 영유권을 소유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러나 잉글랜드가 1833년 말비나스에 대한 식민지화를 선포했고, 이를 기점으로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는 앙숙이 되었다.

이후 말비나스를 둘러싼 끊임없는 갈등이 이어지다가 190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아르헨티나의 영유권 소유에 대한 주장을 무시했던 잉글랜드가 1966년에 처음으로 말비나스를 둘러싼 회담을 열었지만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오랜 시간 동안 아무런 이득을 보지 못한 양국은 결국 이를 전쟁으로 해결하려 했다.

1982년 결국 포클랜드 전쟁이 터지게 된 것이다. 양국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멀어졌다.

이 때문에 양국의 모든 대결은 전쟁으로 비유되었고,  세계 축구계의 중심으로 여겨지던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축구 대결은 그 어떤 경기보다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숙명의 라이벌

두 나라가 축구 경기로 처음 만난 것은 86 멕시코 월드컵 8강전 이었다.

당시 두 팀은 모두 우승 후보국으로 꼽힐 만큼 전력이 타 팀에 비해 월등했다.

아르헨티나에는 마라도나라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선수가 있었고,  잉글랜드에는 탁월한 골잡이 게리 리네커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아르헨티나의 2대1 승으로 끝났지만 훗날 마라도나의 첫 골이 정당했느냐를 두고 논란을 일으켰다.

비디오 판독결과 마라도나의 선취골은 핸들링 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판정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마라도난 이 사실이 밝혀진 후 가진 인터뷰에서 ” 그 볼을 친건 나의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이었다” 라고 말했다.

신의 손 파동 이후 두 팀은 12년이 흐른  98프랑스 월드컵 대회 16강전에서였다.

당시 전력은 세게적인 선수들이 양팀에 다 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스타급 선수들이 즐비했다.

아르헨티나에는 바티스투타, 세바스찬베론, 오르테가등 96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의 주역들이 팀을 구성하고 있었고,

잉글랜드 역시 다시 세계 최고의 골게터라 불리던 앨런 시어러, 원더보이 마이클 오웬, 프리킥의 마술사 데이비드 베컴등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경기 결과는 승부차기 끝에 아르헨티나가 승리했다. 당시에 실시간축구중계로 많은 사람들이 이 경기를 관람하면서 또다시 라이벌 간의 축구는 전쟁이다 라는 말이 한동안 축구인들 사이에서 회자 되었다.

이렇듯 역사적인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한 라이벌 관계는 스포츠 세계에는 꽤 많은 편이다

대한민국과 일본도 그 대표적인 예이다.

스포츠는 스포츠맨십을 바탕으로 정정당당한 경기를 펼치고, 경기결과에 승복하는 한 편의 드라마를 완성하는 것인데,  과연 역사적인 앙금이 남아 있는 두 팀이 만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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